경기도 안성 매산리 석조입상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주는 태평미륵
안성은 과거 팔만구암자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불교문화가 발전하였는데 특히 미륵이 많아
미륵의 고장 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안성 전역에 약 16구의 미륵이 분포하는데 이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미륵이 있는 도시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산리 석불입상은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입을 물리친 송문주장군과 김윤후 장군의 명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이 미륵은 태평미륵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는 중앙관리들의 출장시 숙소를 제공하던 역원인
태평원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과거 이 미륵을 보호하고 있는 용화전 지붕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관할하는 원찰에서나 올릴 수 있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던 청기와가 두 장
올려져 있었는데 1930년 경 누군가가 훔쳐갔고 최근에 한 장의 청기와가 다시 올려졌다고 합니다.
태평미륵의 수인을 보면 오른손은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을 왼손은 중생의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원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태평미륵을 찾고 있습니다. 또한 미륵불의 돌을 갈아 먹거나 돌을 떼어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실제로 미륵불 허리뒤에 돌을 떼어 낸 흔적이
남아 있어 기자(祈子) 신앙의 흔적을 엿볼수 있습니다. - 태평미륵 안내문 -
매산리 석불입상
미륵당이라 부르는 높은 누각 안에 모셔진 높이 5.6m의 미륵불상이다.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것으로 정해져 있는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 모습 또한 보살상과
불상 두 가지 형태로 제작되는데 이 입상은 보살상으로 만들어 졌다.
이 미륵불은 높은 머리 위에 사각형의 보개를 쓰고 있다. 높은 보개는 고려초기 보살상에서 흔희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이를 통해서 이 불상이 고려 초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목구비는
비례가 맞지 않아 괴이한 느낌을 준다. 두 귀는 불에 밀착시키며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고,
굵은 목에는 번뇌 업 고난을 상징하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우견편단으로 아래서 내려오면서 U자형의 옷주름을 이루고 있다. 오른손 모양은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앤다는 의미의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얼굴에 보이는 평면적인 조각수법과 부조화 신체의 크기에 비해 좁은 어깨 등은 충남 논산의
개태사지 석불입상과 비슷하여 고려 초기석불양식을 잘 보여준다. -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