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포항시 장기면 국구암의 신비

약천(藥泉) 2020. 12. 30. 11:26

포항시 장기면 임중리에 있는 국구암에 대한 이야기는 일월향지에서 시작된다.

 

 

國救菴의 怪異

 

迎日郡 只杏面 林中里 區內 林中堤下 溪谷에 所在하는 石室이 高約 10尺 幅約2尺 橫深 15尺 程度의 方圓形의 石窟로 出入口는 一人의 容身이 可能한 實로 天作의 人間이 棲息할 수 있는 窟을 國救菴이라 稱하며 一云 國僧菴이라 한다.   筆者가 踏査한 結果 天然作의 石窟에 石佛을 安置한 形跡이 있어 多少 人工을 加하였는데 新羅時代 禪敎佛僧들의 坐禪修道場이라 보았다. 

壬辰倭亂當時에 磨糜라는 道僧이 亂을 避하여 이 石窟에 와서 居住하며 修道 할 때  天井中央 구멍(穴)으로부터 白米가 一粒式 떨어져 終日 모으면 一人 糧에 足한지라 道)이 이 糧으로 存命하다가 하루는 一友僧侶가 來遊하여 數日 留宿하니 糧이 不足하므로 그 구멍을 더 크게 뚫으면 多糧의 白米가 나올 줄 알고 그 구멍을 크게 竹杖으로 뚫었더니 나오던 白米는 나오지 아니 하고 意外에도 水滴이 떨어지기 始作하여 終仍에는 사람이 그 石窟에 居住하지 못하였다고 傳한다. 

(當日案內한 李公柄俊 多謝)

 

 

 

 

 

국구암의 괴이 (國救菴의 怪異)

 

영일군 지행면 임중리 (迎日郡 只杏面 林中里) 구내(區內) 임중제하(林中堤下) 계곡(溪谷)에 소재(所在)하는 석실(石室)이 고(高) 약 10척(尺), 폭(幅) 약 20척, 횡심(橫深) 15척 정도의  방원형(方圓形)의 석굴(石窟)로 출입구는 일인(一人)의 용신(容身)이 가능한 실로 천작(天作)의 인간(人間)이 서식(棲息)할 수 있는 굴(窟)을 국구암(國救菴)이라 칭(稱)하며 일운(一云) 국승암(國僧菴)이라한다.

필자(筆者)가 답사(踏査)한 결과(結果) 천연작(天然作)의 석굴(石窟)에 석불(石佛)을 안치(安置)한 형적(形跡)이 있어 다소(多少) 인공(人工)을 가(加)하였는데 신라시대(新羅時代) 선교불승(禪敎佛僧)들의 좌선수도장(坐禪修道場)이라 보았다. 임진왜란당시(壬辰倭亂當時)에 마미(磨糜)라는 도승(道僧)이 난(亂)을 피(避)하여 이 석굴(石窟)에 와서 거주(居住)하며 수도(修道) 할 때  天井中央 구멍(穴)으로부터 백미(白米)가 일립식(一粒式) 떨어져 종일(終日) 모으면 일인(一人) 양(糧)에 족(足)한지라 도승(道僧)이 이 양(糧)으로 존명(存命)하다가 하루는 일우승려(一友僧侶)가 내유(來遊)하여 수일(數日) 유숙(留宿)하니 양(糧)이 부족(不足)하므로 그 구멍을 더 크게 뚫으면 다량(多糧)의 백미(白米)가 나올 줄 알고 그 구멍을 크게 죽장(竹杖)으로 뚫었더니 나오던 백미(白米)는 나오지 아니 하고 의외(意外)에도 수적(水滴)이 떨어지기 시작(始作)하여 종잉(終仍)에는 사람이 그 석굴(石窟)에 거주(居住)하지 못하였다고 전(傳)한다.  

당일안내한 이공병준 다사 (當日案內한 李公柄俊 多謝)

 

 

 

쌀알이 떨어졌던 국구암(國救菴)

 

포항시 장기면 임중리 임중못 계곡에 국구암 (국굴암, 국승암)이라고 하는 자연 석굴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 마미(磨糜)라는 도승이 난을 피하여 이 석굴에서 거주하며 수도를 하고 있었을 때 천장의 구멍에서 흰쌀이 한 알씩 떨어졌는데 하루 동안 모으면 한 사람의 끼니가 될 정도 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한 친구가 찾아와 몇일 머물게 되었는데 양식이 걱정된 스님은 그 구멍을 크게 하면 더 많은 쌀이 쏟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대나무 지팡이로 크게 파버렸다. 그러자 기대했던 더 많은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자료 영일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