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선병국 가옥
충청남도 보은 선병국가옥
1909년 부터 1921년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사랑채 안채 사당을 기본으로 대문채 행랑채 화장실등 부속건물과
텃밭 장독대 정원을 두루 갖춘 대규모가옥으로 과거에는 행랑채 과객실 방앗간채까지 있었다
고택에 들어가기 전에 다리위에서 물길을 바라다 보고 있습니다.
좌측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이곳에서 갈라져서 위쪽과 우측으로 한줄기씩 내려가네요
한줄기 내려가는 물줄기..
여기서 갈라진 물줄기가 아래에서 다시 만난다고 하니 가옥이 있는 이곳은 일종의 섬이라고 할수 있죠..
전반적으로 관리가 잘 안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것은 잡초들 때문에 그런것 같습니다.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담벼락을 보니 남평문씨 세거지에서 보았던 것처럼 전통 가옥의 담벼락보다
높아서 안을 들여다 볼수가 없습니다. 구한말 이후의 특징인가 봅니다.
집안 곳곳에 엄청큰 장독대가 몇군데 있던데..장맛은 어떨런지...
평면 배치도를 보면 세채의 건물이 각각 사각의 담장을 두른 형식으로 되어 있어 품(品)자형을
이루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씩 틀어진 것은 안채는 안채대로 사랑채는 사랑채대로 배산과 임수의 방향을 잡았기에
그렇다고 하네요..
대문 앞..궁이나 사찰을 제외하고 이제껏 본 대문중에서 제일 큰듯...
대문을 들어서니 정면으로 사랑채가 보입니다. 뒤쪽의 산과 잘 어울리죠..
사랑채는 앞 뒤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여 더욱 넓은 공간을 활용하게 하였다. 가운데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 옆에 큰사랑방을 비롯한 골방 약방 마루 등을 시설하였다. 工자형(H자형) 평면의 안채는 사랑채의 왼쪽에
자리하였는데 가운데의 대청이 중심이 된다. 대청은 앞뒤 툇마루를 통하여 어떤방으로도 갈 수 있다.
부엌은 아주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뒤에는 다락이 마련 되었다. (안내문에서)
안내문을 보고 옆을 보니 담벼락도 무너지고 문도 뜯겨지고....마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듯...
옆으로 보니 안채가 정면으로 보입니다. 역시나 배산이 보기 좋습니다.
대체로 사랑채와 비슷한 구조를 하였으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원기둥을 사용한 반면 안채는 앞쪽만
원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안내문에서)
주인의 양해를 구해 안채쪽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집 전체를 두른 외벽이 있고 각 채별로 또 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니 헛담도 있네요..
안채를 넓게 둘러싸서 안마당 공간을 만들고 있는 ㄷ 자형의 행랑채는 대문간 문간방 구들 광등으로 만들었다.
사랑채는 행랑채의 북쪽에 사랑채와 축을 나란히 해서 배치되었다. 남쪽에 부엌을 두고 있는 제수채와 사당을
연결하는 복도채는20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난 시설들로 비바람이 칠 때도 의례를 거행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안내문에서)
사당..
보기 드물게 사당의 지붕이 팔작지붕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당은 보통 안채의 왼쪽편에 위치한다고 하는데 여기는 오른편에 있습니다. 물길로 봐서 왼쪽이
아래쪽이라서 위쪽으로 배치하려니 그리 되었다고...
그런데 사랑채의 위치에서 보면 왼편이니 맞는 것도 같고.....
한옥의 문은 모두 아래는 틈이 넓고 위는 틈이 없도록 일부러 만든다고 하는데 사실일런지....
선병국 가옥은 工자형의 특이한 구조로서 시멘트 벽돌등 새로운 건축자재가 사용되고 한옥의 규모를 크게
하는 구 한말 변화하는 한옥의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 가옥을 보면서 하나의 마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재 면적이 4천평정도 되는데 그 전에는 이보다 더 컸다고 하니.....
밖에 나와 보니 효열각이 있는데 이또한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데다 화려한 단청까지..
안에 들어가서 보니 마치 사찰의 일주문 지붕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