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암에 있는 불화 하나 더..
알렉산더 군대의 동방원정은 인도에도 위기감을 조성하게 되고 인도는 연합군을 결성해 그리스 군대를
막고자 했다. 이 때 인도 연합군의 수장으로 등장한 인물이 찬드라굽타이다. 알렉산더의 돌연사로 두사람
간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지만 대항세력의 결정은 인도 통일의 기반이 된다. 찬드라굽타는 마우리아왕조를
인도의 통일제국으로 만든다. 찬드라굽타가 광개토대왕이라면 아들 빈두사라는 장수왕과 같은 인물이다.
창업더 어렵지만 수성은 더 어렵다는데 빈두사라는 마우리아왕조가 통일제국으로 이어갈수 있는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빈두사라에게는 101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소카이다. 아소카와 관련된 기록 중
가장 특이한 것은 인물이 추하고 성격이 난폭하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태자를 미리 정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왕자들이 많을 경우 부왕이 사망하게 되면 내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아소카의 난폭성과
지략은 이러한 부분에서 탁월한 유용성을 발휘한다. 자신의 이복형제 99명을 포함한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통일전쟁을 전개하면서 왕권을 강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치룬 칼링가 전투에선느 사망자 10만에 포로가 15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전투를 끝으로 아소카의 인도 통일은 끝이 나며 아소카 역시 전쟁의 참상에서 환멸을
느꼈다고 기록은 전하다. 잠아함경 권23 아육왕경에는 이 무렵 부처님의 사리탑이 발견되고 아소카는 이를
헐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금판에 쓰인 아소카왕의 전생담이 발견된다.
어느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죽원 즉 죽림정사에 계시다가 아침공양을 받으시려고 여러
비구들을 거느리고 왕사성 안으로 들어가시게 된다. 이때 길가에서 사야와 바사야라는 두 아이가 흙장난을
하고 놀다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공양을 받으러 오시는 것을 보고는 그 거룩한 모습에 환희심이 절로 나서
소꿉 장난으로 보릿자루라고 챙겨 두었던 모래를 그대로 부처님 바리 안에 담아 드린다. 그리고는
장차 이 공덕으로 천하를 얻는 전륜 성왕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그 진심을 아시고 미소로 이를 받으신 다음 뒤따르는 아난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멸도한후 백년 뒤에 이 아이는 파련불에서 세상 한쪽을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될 터인데 성은 공작(마우리아)이고 이름은 아육(아쇼카)이리라. 정법으로 다스리고 또 내 사리를 널리 펴기 위해 8만 4천탑을 건설할것다
그러나 모래를 보시하고 받은 복덕이기 때문에 그 모습이 추하고 성질이 좋지 않다는 세세한 부분까지도 설명해 준다.
이를 접한 아소카는 깊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이제까지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생각한 부분이
모두 부처님께 모래를 보시한 복덕에 불과했기때문이다. 이 충격은 아소카로 하여금 불교를 믿게하는 동시에
성격을 완전히 바꿔서 자비의 왕이자 복지의 왕이 되도록 한다. 도로와 우물을 정비하고 가로수를 심으며 동물의
고통까지도 좌시할수 없어 동물 병원을 만드는 등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복지 정책을 시행하게된다.
이 때문에 아소카는 인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다. 오늘날 아소카가 불교유적을 참배하는 과정
에서 건립한 바라나시의 기념 석주 주두 부분은 인도의 국장이 되었으며 마우리아왕조를 나타내는 공작은
인도의 국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