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은사님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오고 광주에서 올라오고 포항과 광양등 전국에 흩어져 있던 포철공고15회
전기과 졸업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3년 동안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러지만 까까머리 고등학생시절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친구도 있고
세월의 흐름을 비켜서지 못한 동기도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친구 소식에는 모두들 한숨을
쉬기도 했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와 같은 일상적인 스승의 날이지만 3학년때
담임이었던 최원학 선생님 부부를 모시고 우리들만의 조촐한 사은행사를 한 것이다.
선생님도 세월의 흐름속에 많이 변하셨지만 여전히 건강하신 모습이었고 졸업후 처음 보는
제자들의 이름과 번호까지도 확실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다함께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 사은행사, 계획을 주도한 종호나 행사를 준비한 기철이 전국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을 찾아 연락하고 모이게 한 관우, 옛 사진들을 모아서 추억을 되살려준 재희 모두
고마운 친구들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전기과 이면서도 단 한번도
전공과목 선생님이 담임을 한적이 없다. 영어,음악,물리 담당선생님이 우리의 담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포철공고내 인문계였다고 자족하곤 했다.마지막으로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최원학 수학선생님 이었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계속 은사님을 모시고 행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간혹 행사를 할 때마다 전공과목 선생님이나 1,2학년 담임 선생님들을 배제하고
항상 최원학선생님만을 모시고 했다. 왜 그랬을까? 단 한번도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그 날은 다들 모인 상태에서 문뜩 그 문제를 던졌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친구들 모두
‘정말 왜 그랬을까?’ 하는 표정들 이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친구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2학년 때까지 우리반은 잘 하는게 하나도 없었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모든면에서
꼴찌를 하고 있었고 선생님들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지 시키듯이 항상 그렇게 대해 왔고
우리 스스로도 심한 패배의식에 잡혀 있었다.그런 우리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신 분이
최원학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말씀 하시지 않고 여러분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하시면서 남들 공부하는 시간에 우리는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러
나갔다. 반별로 담당 구역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 시간에 잡초를 뽑는 것은 우리 반 밖에 없었다.
투덜대는 친구도 있었고 공부하지 않으니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잔디밭에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은지라 한달 뒤 환경평가 시간에 우리 반이 일등을 하여 상을 받았다. 아주 작은
상이었지만 그래도 일등을 한 것이다.
그 날 조회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일등도 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사소한 것이지만 일등을 해보니 기분이 좋지 않느냐…이런 것을 성취감이라고
하는데 성취감을 맞본 사람은 그 느낌을 알기에 또 도전을 하고 다른 부분에서도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저력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또 하나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그 시절에는 용납할 수 없는 건의를 해도 ‘안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등 부정적인 말보다 ‘그래 한번 더 검토를 해보겠다.’ 며
우리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 주셨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심전심으로 선생님만 모시는 것 같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기억이 난다고 잠시 동안 그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 황당했던 건의 중의 하나가 지금 들어보면 우습기도 한 두발 자율화와 외출 시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철모르고 지내던 고등학교 3년의 공동체 기숙사
생활이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버젓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듯 모두들 그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그래서 동기들이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최원학 선생님은 우리 부부의 주례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선생님한테는 우리부부가 처음으로 주례를 선 제자이고 그 이후로 많은 동기들을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고 결혼을 하였다. 자연스럽게 결혼식 이야기로 흘러가니 주례로 모셨던 제자들이
선생님 주위에 앉게 되었다. 선생님 사모님께서 자상한 모습으로 물어보신다. 선생님의
주례사는 모두 같은데 딱 세가지로 요약이 가능한데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선생님의
주례사를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나요?
선생님의 주례사는 첫번째 부부간에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 부모님께 효도 해야 합니다.
세번째 부부간에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합니다. 이 세가지 였습니다. 나는 나만이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두들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사모님이 다시 한번 말씀 하신다. “그렇게 사시면 됩니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아니 계속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며 살 것이니 제자들도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삶이 주례사에 그대로 들어
있으니 그렇게 사십시요.”
현재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하시고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다고 했다. 낯선 시골에 정착해
지금은마을 이장으로 봉사하고 계시고 주2회 정도는 수학 선생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탱고강좌를 하고 계신다. 퇴임 이후에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천 하다 보니
지금은 아주 만족스런 삶을 살고 계신다.
제자들이 찾아 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에게나 마음을 다하면
그 마음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당부의 말씀을 하시며 떠나기 전에 춤을 한번
보여주시겠다면 서 두 분이 자리를 잡으신다.
춤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는 두 분이 다정한 포즈로 지긋이 눈감고 추는 춤이 탱고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 곱게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아내도 잠깐 참석했는데 눈시울을 글썽 이기까지 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보여 주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