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불교유적답사 (병령사석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참 길다. 잠을 청하는 분들도 있고, 서로 본것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분들도 있다. 나름 답사의 고수를 자처하며 무용담 같은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 한다.
그 중에 가장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은 동일한 곳을 답사한 경우이고, 더 적극적인 대화가
이루어 지는 것은 함께한 답사에 대해 이야기 할 때다.
중국은 베이징 시간으로 전국이 하나의 시간대를 사용한다고 한다. 관공서의 근무시간도 전중국이
동일하다고 하니 여름에 아홉시 반에 해가 지는데 여섯시에 퇴근 하는 상황이 된다고 한다.
시간이란게 삶속의 관념이지 그리 중요한게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숙성 성도 란주시는 중국 다섯군구중 하나로 서쪽 삼성을 관장하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라고 한다. 란주시를 관통하는 황하를 보면서 생각보다 유속이 빠른 것에 놀랐다.
황하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다리라서 황하 제일교라 명명된 다리는 강폭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황토빚 물결에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진다.
황하 건너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는 백탑사의 탑은 원나라시대 사리탑이다. 맑은 날
멀리서 보면 하얗게 보여 백탑이라고 한다니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우리와는 달리 탑과 부도가 거의 같은 양식으로 조성된 것 같다.
동포에게 중국 사람들은 공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세계 4대성인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자랑하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 온다.
" 중국 사람들은 공자를 싫어 합니다. 왜냐 하면 공자의 윤리 때문에 중국은 한번도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는 약한 민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엥!! 이건 뭔소리? 중국이 침략한 적이 없다고?
중국속담에 더러운 당나라 무능한 송나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민족은 강하지만 상대하기 싫고
한족은 인구는 많지만 무능하다. 그것은 공자의 사상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중국에게 침략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중국을 이끌고 있는 한족은
단 한번도 그런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진이든 거란이든 몽고든 이민족 국가들이라는 것....
지금은 유가협댐에 의해 물길이 생겼지만 예전에는 란주부터 오아시스 도시들을 경유해서
병령사 석굴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현장 스님도 3개월간 머물렀다고 하는데 몇날 몇일에
걸쳐 산길 따라 걸어 갔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조금 지나니 자욱한 안개너머로 오른쪽에 제법 산이 보이고, 왼쪽은 희미하게 윤곽만 보인다.
한참을 지나 산기슭에 짐승들이 보이는데 사육하는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맑고 고요한 호수위를 괘속정으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한다고 하니 이게 호수인지 바다인지
아무튼 크다.
병령석굴의 병령이란 의미는 티벳어로 백만불 이라고 한다. 대륙 사람들 통 큰거야 이제
어느정도 알겠는데 도대체 얼 마나 많은 불상을 조성하려고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여기서도 개미들 생각이....
굴마다 자리잡고 있는 불보살상도 그렇지만 벽체를 수놓고 있는 화려한 벽화들이 눈길을 끈다.
채색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조성당시 화려함을 느낄수 있다.
대불위의 169, 172호 굴은 특굴이라고 해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오만원 정도여서 결코 저렴한 비용이 아니라서, 불교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갈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일행중 두명을 제외하고 모두 올라갔다.
우리 일행 다섯명 들어가는데 가이드 두명과 공안 1명이 따라붙어 철저하게 통제한다.
사진기를 포함한 일체의 짐을 대불 아래두고 몸만 가파른 나무 계단을 따라 아슬 아슬 하게 올라갔다
대불 양측에 감실로 구성된 169호와 172호에는 간다라와 마투라 양식이 혼합된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옷이 두텁께 표현되는 간다라양식과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얇게 표현 되는
마투라 양식, 통견의 간다라와 우견편단의 마투라 양식이 혼합되어 통견의 얇은 옷주름이
보이고 있었다. 420년경 개착이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고행상도 있었다.
감실 전체를 수놓은 화려한 불보살들이 원형 그대로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그 자리에 들어서는 순간 절로 무릎 꿇게 되지 않았을까?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