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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스님이 錫杖을 부리다

약천(藥泉) 2016. 5. 2. 16:22



삼국유사에는 양지사석조를 별로 구분하여 고대의 조각가로서 유일하게 양지스님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미스터리하게도 시대를 앞서가는 정교하고 색다른 기법과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지만, 정작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즉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고, 오직 신라 선덕여왕 때 홀연히 자취를 나타낸 사실과 사천왕사 탑 기단부의 조각상을

제작하였다는 내용을 통해 선덕여왕에서 문무대왕의 연대까지는 생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록에는 그가 덕망 있는 고승이었으며 여러가지 기예에도 능통하여 상기한 사천왕사 목탑의

사천왕상을 비롯하여 영묘사의 장육삼존, 천왕상, 전탑의 기와 등이 모두 그의 손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양지스님이 주석했던 석장사라는 사명은 바로 양지스님의 신비한 지팡이에서 유래된 것이다.

삼국유사는 스님이 석장사에 주석하면서 지팡이(석장)위에 시주할 포대를 걸어두면, 그 지팡이가 

저절로 날아가 시주받을 집에 가서 스스로 흔들어 소리를 내면 그 집에서 이를 알고 시주를 하며,

포대가 다 차면 다시 그에게로 날아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양지스님이 거주한 사찰의 이름을 석장사(지팡이 절)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석장사지에서 출토된 탑상문전은 전탑에서 사용되는 벽돌에 탑과 불상을 새긴 문양전이며, 틀을 만들어

기와를 찍듯 찍어서 제작하였다. 문양은 불상과 탑이 번갈아가며 배치하여 각각2구와 2기씩 표현하였다.

이 벽돌에 나타난 불상은 대체로 3가지의 형식으로 구분된다.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돌출된 양각적인 

표현과 입체감을 강조하여 형상만을 부각시켜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 이와 정반대로 선각형태의 음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상과 탑을 번갈아가며 다양하게 안치한 탑상전은 단순한 

문양으로 불상과 탑을 새긴 것은 아닐 것이다. 부처와 탑의 의미를 동등하게 신성시한 것이며 탑을 부처의

진정한 열반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의미일 것이다.

천왕사 목탑은 금당 남쪽으로 동편과 서편에 각각 1기씩 위치해 있었습니다.

동.서목탑은 정면 3칸 측면 3칸 정방형의 구조로 추정됩니다.

기단의 형태는 지대석 면석 그리고 갑석으로 이루어진 가구식 기단입니다.

특히 기단 면석의 경우 녹유신장벽전과 당초문전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단 형태가 매우 화려하면서 장식적입니다.

계단은 4면에 각각 1개소씩 모두 4개소가 설치 되었습니다. 목탑 중앙에 위치한

심초석은 한 면이 116cm의 정방형 석재로 상면은 치석하였지만 매몰되는 밑면과

옆면은 거칠게 다듬어 마무리하였습니다. 심초석 중앙에는 너비 30cm, 깊이 33cm

방형 사리공이 있습니다.



녹유신장벽전은 동 서목탑 기단부 네면에 모두 24점(동서 목탑 총48구)이 배치되었으며

종류는 3가지(A B C 형)로 분류 할 수 있습니다. 

각 벽전은 목탑 중앙계단을 기준을 왼쪽에 3점, 오른쪽에 3점 기단 한 면에 모두 6점이

배치 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배열순서는 신장상이 중앙을 바라보고 있는 B형을

가운데 두고 그 우측에는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A형이 있으며, 좌측에는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C형이 위치합니다. 

출토된 단편들을 조합하고 3D스캔으로 복원한 결과 벽전의 전체 크기는 약 70 X 90 cm로

세 유형이 유사하였습니다. 벽전 겉에는 원래 청록색의 유약이 얇게 시유되어 있었지만

산화되어 변색되 예가 많으며 혹은 박락되어 채색흔적이 보이지 않는 벽전 편들도 

다수 확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