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어사 대웅전 - 자료
목조 삼세불좌상
현황
- 세구 모두 등신불 크기의 불상으로 중앙 석가모니불은 전체 높이가 98.5cm 얼굴높이 29cm 무릎폭과 어깨폭은 각각69cm 41cm 로 제일 크고
양쪽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전체 높이가 약 87cm 무릎폭은 62cm 어깨폭은 38cm이다. 세구 모두 불상의 형식은 거의 동일한데 불상의 머리는 육계를 따로 표현하지 않고 머리카락은 나발형태로 매우 촘촘하게 표현되었으며 머리 중앙에는 반원형의 중앙계주가 있고 정상에는 원통형의 정상계주가 있다. 얼굴은 방형이고 귀는 크고 귑솔은 두툼한데 그 끝부분이 아래쪽으로 약간 벌어진 형태는 이전 상정尙淨 조각들과 같은 모습이다. 눈은 가늘고 길며 눈썹은 휘어졌고 미간에 백호가 있다. 코는 원통형으로 높은 편이고 입은 끝이 살짝 올라가 미소 띤 형태인데 그 끝이 살짝 들어가 있다. 약간 숙인 얼굴 아래 목에는 삼도가 있고 가슴은 평판적이다. 어깨는 약간 각진 형으로 어깨 끝에서 급하게 꺽이며 내려간다.
착의법은 중앙 석가모니불 경우는 변형우견편단으로 오른팔이 드러나 있고, 양 협시불도 통견의 이중착의법으로 대의 안쪽에 상의를 걸쳐 입고 있다. 세 구 모두 두꺼운 대의가 목에서 한번 접힌후 우측 안쪽으로 큰 주름을 한번 만든후 세겹이 접힌채 팔꿈치 아래로 내려가 복보에서 걸쳐져 있다. 끈으로 묶은 군의 상단 표현은 세 구 불상이 다른데 중앙 석가모니불은 연판형이고 좌측 약사 불은 주름형 우측 아미타불은 상단에서 사선으로 한번 접힌 형태이다. 이전 불상에서 보여지던 끈 아래 '八'자 모양의 선이 오어서 불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앞쪽 대의자락은 오른쪽 발목에서부터 부채살처럼 퍼지며 안쪽 S자형의 주름과 왼쪽 무릎을 거의 덮는 연잎모양의 주름과 그 끝이 둥근 형태는 이전 불상과 동일하다. 무릎 아래 대의 끝이 양 옆으로 물결보양을 띄며 퍼져가는 것도 백련암과 고견사 불상과 같은 모양이나 무릎 중간 높이에 굵게 양 옆으로 접힌 주름은 오어서 불상에서는 사라졌다. 수인은 중앙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려 손가락은 모두 폈고 왼손은 허벅지 위에 손등을 가볍게 내린 채로 중지와 엄지를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이다. 좌협시 약사불상과 아미타불상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 수인을 좌우 대칭으로 표현하였고 나머지 한 손은 허벅지 위에 손바닥이 향한 채 중지와 엄지를 댄 수인이다.
도상
- 도상은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한 석가삼세불釋迦三世佛도상으로 중앙에 석가불과 좌측의 약사불 우측의 아미타불이 배치된 형식이다. 본존이 비로자나불인 경우는 비로자나삼세불이라 하고 석가불인 경운 석가삼세불이라 한다.비로자나 삼세불은 고려 조선을 합쳐서 6점 밖에 등장하지 않기에 크게 유행한 도상은 아니다. 그에 반해 석가삼세불은 대다수 삼세불이 속한 형식으로 좌측에 미륵불이 배치된 경우(수종사 5층석탑 금동불상 삼세불좌상)와 다보불이 배치된 경우(화엄사 목조삼세불좌상)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 약사불이 위치한 형식이다.
석가불과 약사불의 존명이 밝혀졌고 석가불의 수인이 항마촉지인으로 표현된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는 안심사 소조삼세불좌상(16C후반)과 파주 보광사 목조삼세불좌상이 있으며 존명이 모두 밝혀진 예 중 가장 오래된 조각으로는 완주 송광사 소조삼세불좌상(1614년)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 석가삼세불은 양쪽 두상 모두 오른팔을 들고 있어 대칭적이지 않아 양쪽 대칭적으로 들고 있는 삼세불중 가장 이른 예는 1635년 조성한 영광 불갑사 목조삼세불좌상이다. 불갑사 목조 삼세불좌상은 尙淨이 1747년 수화승 태원과 함께 개금작업에 참여했던 불상으로 오어사 삼세불상 제작시 모본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양식적 특징
- 오어사 삼세불상의 공굴린 형태의 조각으로 인한 부드러운 상호와 깊게 파지 않은 매끈한 표면처리 등은 이전 조각들과 동일한 특징이다.
특히 설법인으로 위로 들어올린 팔로 인해 아래로 내려오는 옷의 유연함을 보면 상정尙淨의 조각풍이 얼마나 부드러움을 강조했는지 느낄수 있다. 또 두꺼운 불의를 입었으나 몸에 밀착된 듯 가볍게 표현된 옷 처리로 무거운 옷의 중압감을 상쇄하여 상정 특유의 활기찬 느낌은 오어사 삼세불상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활기있는 느낌은 상호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팽팽한 뺨의 양감과 눈은 가늘지만 눈꺼플의 양감으로 눈이 커 보이는 효과를 일으켜 종교적 근엄함이나 신비감 보다는 똑똑한 청년학자에게서 느낄 수있는 총명한 모습에 가까워 보다 현실적인 조각풍이 강조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힘 있는 청년에서 느낄 수 있는 기운차고 활력 넘치는 모습은 18C중반 이후 다른 조각승의 불교조각에서 간혹 느낄 수 있는 특징으로 17C 불상의 답습과 형식적 표현으로 기운 빠져 보이는 시대양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왼쪽 어깨에서 첫 번재 접힌 물방울 모양의 주름 , 앞쪽 대의자락 중간에 S자형 접힘과 왼쪽 무릎 위에 있는 끝이 뭉뚝한 연잎형태의 대의자락 등은 여전히 나타나지만 배 부분의 군의를 묶은 끈 하단에 '八'자형 주름과 양 무릎 중간에 밖으로 이어진 굵게 접힌 줄이 없어진 것은 이전 불상보다는 장식적 표현이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장식적 표현의 감소는 연봉일체형 대의자락이 완전히 사라지고 대좌도 연꽃과 사자 구름으로 장엄된 대좌가 아니라 본존은 조선후기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앙련과 복련이 맞대고 있는 형태이고 양 협시불은 연입형의 앙련만으로 구성한 대좌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좌측 약사불은 왼손을 우측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올리고 좌우 대칭으로 안정감이 있으나 본존과 양 협시불의 착의법이 약간 다르고 특히 가슴 아래 군의 상단의 표현은 세 불상 모두 다르게 표현하여 개별성과 동일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전 불상보다 크기가 커져 소형불상에서 느낄수 있는 단아함은 줄어들었고 상체가 건강해져 상승감은 줄어들었다. 입 끝의 보조개도 약화되어 고졸한 미소는 사라지고 백련암과 해인사 불상보다는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조각승 상정尙淨
18C 중반 조각승 상정은 진열進悅의 계보를 이은 조각승으로 1747년 영광 불갑사 대웅전 삼존불 개금을 시작으로 1771년 김천 직지사 목조불좌상 중수 개금까지 약 35년 동안 불상 조성 5건 개금중수 6건의 활동을 전개한 조각승이다. 수화승 태원太元과 함께 1747년 영광 불갑사 목조삼세불좌상, 1748년 장흥 보림사 신법당 불상을 중수개금 하였으며 1755년 수화승으로 양주 회암사 목조여래좌상 부천 석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원봉안 용화암)을 조성하였다. 양주 회암사 목조여래좌상은 우너래 창평 용흥사에서 봉안한 불상으로 발원문에 상정복위망부모장한신 김씨선업양주영가 尙淨伏爲亡父母張漢臣 金氏善業兩主영駕 라는 기록으로 보아 상정의 속성은 장씨이고 아버지는 장한신 어머니는 김씨임을 유추할수 있다. 부천 석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밝혀진 상정 불상중 유일한 보살상인데 크기는 작지만 상승감이 느껴지는 보살상으로 진열의 보살상 보관과 친연성이 있다. 원 봉안처는 용화암인데 용화암은 진주 청암면 방장산 미륵암일 가능성이 높다. 양주 회암사 불상과 석왕사 불상은 모두 연봉일체형 대의자락 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 뒤 1757년 구례 화엄사 대웅전 삼존불상을 계초와 함께 개금하였고 이대 의겸義謙과 색민色敏이 제작한 대웅전 석가후불도 화기에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의 극락왕생을 비는 시주자로 등장하였다. 1761년 해인사 백련암 불좌상과 거창 고견사 불좌상을 해인사 백련암에서 조성하였다. 이때 연봉일체형 대의자락은 사라졌지만 연꽃과 사자를 통판 투각으로 장엄한 방형 대좌를 함께 만들었다. 1765년 포항 오어사 목조삼세불좌상을 조성했는데 3구의 불상을 일률적이지 않게 우측 어깨 대의주름, 군의 상단주름등을 조금씩 다르게 제작하였다. 1767년 영주 부석사 아미타불좌상을 개금하였고 2년후 1769년에는 불국사 대웅전 삼존과 관음전 독존을 개금 하였는데 <불국사 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도금양공 호남상정 塗金良工 湖南尙淨 이라 적혀 있어 1760년 이후 경상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출신지와 소속사찰은 호남임을 분명히 알려 주고 있다. 1771년 김천 직지사 목조불좌상 개금을 끝으로 기록에서는 사라지지만 남양주 흥국사 목조석가삼존불에서 상정 불상의 특징이 나타나 상정이 제작한 불상으로 추정된다.
상정이 조성한 불상의 양식적 특징은 18C 전반 조각승 진열의 특징을 이어받아 공굴린 턱선과 원통형 코, 팽팽한 뺨과 양감 있는 눈꺼풀 등 활기차고 현실 적인 상호, 경직되지 않고 이완된 어깨선과 적당한 신체 비례로 인한 편안한 자세,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대의주름, 부드러운 조각기법 등이다. 상정은 18C 전반기의 다소 경직되고 딱딱한 상호와 신체 표현을 부드럽고 생동감 있는 불상으로 발전시켰으며 연봉일체형 대의자락 등 독특한 표현으로 창의적이고 운동감 있는 불상을 조성하였다. 특히 활기차고 활력 있는 상호는 같은 시기 1748년 백담사 목조여래좌상( 수화승 인성印性), 1754년 영산 천태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수화승 묘징妙澄)등 다른 족각승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기운 생동한 상호이다. 이러한 양식 특징은 상정이 기록에서 사라진 1771년 이후 그와 함께 불상조성에 참여 했던 조각승 정숙,계초,계심등 15명에 의해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