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해설하는 보람을 느끼께 하는 메모 ^^
어릴 적 일이다. 흑백이지만 한창 TV가 보급되는 시기였고 라디오와는 또 다른 코미디 프로그램이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었던 시절이니 나도 한두 번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비단이 장수 왕 서방~ 명월이 한 테 반해서~ “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를 놀리는 말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다 80년대 초반 모 식품회사에서 ‘왕서방면’이라는 신제품을 출품하면서 ‘맛 좋은 왕서방면’이라는 카피를 내세워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하는 바람에 성 때문에 또 한번 친구들로부터 조롱 아닌 조롱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서 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는 김, 이, 박, 처럼 흔한 성도 있고 탁 이나 남궁, 처럼 흔치 않은 성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왕씨인 나만 왜 그런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그런 노래와 TV 광고까지 나오는 것으로 봐서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성씨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에도 밖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서 잘 이야기 하지 않고, 한번 마음 상해도 돌아서서 놀다 보면 금방 잊어버리는 단순한 성격 이기에 부모나 가족들에게 조상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못들은 상태에서 성씨에 대한 콤플렉스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에겐 촌이지만 제법 작지 않은 지역에서 공부며 운동이며 눈에 띄게 잘해서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속칭 엄친아로 불리는 터울 많은 형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국사과목을 배우기 전으로 기억되는데,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형 스스로 성씨에 대해 궁금 했었는지, 어느날 ‘왕건’이라는 조그만 책을 하나 들고 왔다. 그림이 많고 글씨가 적은 읽기 매운 편한 책이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는 충분했다. 나라를 개국한 왕 이었다니 그것도 후삼국을 통일한 위대한 왕, 알 수 없는 희열과 감동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고학년이 되어 국사 교과서를 받았을 때 처음으로 펴본 것이 고려시대 부분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거기에서 ‘왕건’이라는 이름을 확인한 순간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고 국사는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다. 고려시대를 이야기 하고 고려시대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선생님들이 너무나 존경스러웠고 막연하지만 역사선생님이 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한 것 같다.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전공이 결정되고, 산업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이에 그 꿈은 자연스레 포기가 되었지만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까지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신라의 고도 경주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약간의 관심과 시간만 투자를 하면 각종 문화재를 접하거나 문화재 관련 단체 활동하는 것이 수월했다. 포항문화역사길라잡이의 보경사 해설을 시작으로 해서 국립경주박물관 전시물 해설사로 자원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가끔 이런 메모를 받으면 정말 보람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