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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Sign- 수결

약천(藥泉) 2018. 6. 14. 10:30



우리는 도장문화이고 사인(sign)은 서양 문화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답사중에 경기전 지하 박물관에서 고문서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회장님께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낙관(落款) 이나 인장()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위조가 쉽다는 단점이 있어 

우리 선조들은 수결(手決)을 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낚서 같이 알수 없는 글자가 많은 부분이 있는데 

수결을 연습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一心으로 추정 된다고 하니 장군의 삶과 잘 들어맞는 

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난중일기 - 수결연습 흔적


 


그런데 글을 모르는 하층민들은 어떻게 하였을 까요?

손바닥을 그렸다고 합니다. 수인(手印) 이라고 한다네요. 

수촌(手寸 )이라고 해서 왼손 가운뎃 손가락의 첫째와 둘째 마디사이의 길이를 재어 

그림으로 그려 놓았으며 좌촌(左寸)이라고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남자는 수인을 여자는 수촌을 주로 사용하였다고 하네요. ^^

 

도장은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널리 퍼진것이고 수결이 원래 우리문화, 

그래서 사인이라 하지말고 수결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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