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호혈석
통도사에는 백운암에 얽힌 호랑이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전설을 뒷받침하는 2개의 돌이 있다
이 돌을 호혈석虎血石이라고 부른다. 하나는 극락전과 급수대 사이의 땅바닥에 있고 또 하나는
상노전의 응진전 옆에 있다.
호혈석은 호랑이 기를 누르기 위해 호랑이 붉은 피를 발랐다는 넓은 반석으로 피가 묻은 것처럼
붉은 색이 얼룩져 있는 돌이다. 극락전 옆의 호혈석 위에는 움푹 파인 부분이 있는데 이를
호랑이의 발자국이라고 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모래와 흙먼지로 덮혀 있어 식별이 쉽지 않지만
물을 부으면 자국이 뚜렷이 나타난다.
극락전 옆의 호혈석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백운암에는 젊고 잘 생긴 홍안의 스님이 홀로 기거하며 경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장차 훌륭한 강백講伯(경전을 가르치느 스님)이 되기 위해 경 읽기에
매진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저녁 예불을 통해 자신의 여원을 부처님께 기원하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어느 봄날 저녀 무렵 스님은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예불을 마치고 경을 읽고 있었는데 문득 인기척이 나는가 싶더니 젊은 여인의 곱디고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한 스님이 문을 열자 아리따운 처녀가 바구니르 허리춤에 붙인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친구들과 나물을 캐러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 멀리 불빛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 왔다며 하룻밤 묵어갈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스님은 난처하긴 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단칸방의 아랫목을 처녀에게 내어주고 자신은 윗목에
정좌한 채 밤새 경전을 읽었다. 스님의 경 읽는 음성은 낭랑하였으며 고요한 산중에 울려 퍼지는
그 음성은 마치 신비경으로 인도하는 듯 처녀를 사로 잡았고 그날 밤부터 처녀는 스님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날이 밝자 처녀는 집으로 돌아 왔지만 마음은 스님에게 가 있었고 사모하는 정이 날로
깊어져 마침내 병이 나고 말았다. 지체 있는 가문의 무남독녀인 처녀는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했고 처녀의 어머니는 딸이 마음의 병이 있음을 알고 근심을 말해보라고 일렀다.
그때서야 처녀는 지난날 만났던 젊은 학승 이야기와 함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숨김없이
고백했고 사연을 들은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백운암으로 스님을 찾아가 딸과 혼인해
줄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젊은 스님의 굳은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고 얼마 후 처녀는
병이 악화돼 끝내 한 맺힌 가슴을 안고 눈을 감게 되었으며 죽은 처녀는 그날로 영축산의 호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응진전 옆의 호혈석
그 후 여러해가 지나고 그 젊은 스님은 초지일관해 드디어 강백이 되어 처음 강론을 열개 되었는데
저녁무렵 감로당 산중 연회가 무르익어갈 무렵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더니 큰 몸집의 호랑이가
감로당 지붕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서 사납게 울부짖자 대중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필경 대중 속에 누군가가 저 호랑이와 사연이 있는 걸세"
"그렇다면 각자 저고리를 벗어 밖으로 던져보세 그럼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것이 아닌가"
연회에 참석한 스님들은 저마다 저고리를 벗어 하나씩 밖으로 던졌으나 호랑이는 그냥 옆으로
밀쳐 내었다. 마지막으로 새로 취임한 강백스님의 저고리를 받더니 마구 갈기갈기 찢으면서
더욱 사납게 울부짖는 것이었다. 이를 본 강백스님은 아무래도 속세의 인연인가 싶어 합장 예경하고
바깥 어둠 속으로 뛰어 나갔고 호랑이는 스님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재빠르게 낚아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튿날 산중 모든 대중은 강백 스님을 찾아 온 산을 헤매다가 스님이 젊은 날 공부하던 백운암 옆
산등성이에서 상처 하나 없이 누워 있는 스님을 찾았으나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남성의 상징이 보이지 않았다.
미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호랑이로 태어난 처녀는 살아생전 흠모하던 스님과 그렇게 라도 연을
맺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에도 호랑이의 횡포는 사그라질 줄 몰랐는데 그러던 어느날 통도사를 찾은 한 고승이 말하기를
'이곳은 호랑이의 기운이 넘쳐나는 곳이니 호랑이의 혈을 눌러야 한다'며 붉은 피를 바른 큼직한 붉은
반석 2개를 도량에 놓게 하였다. 그러자 그 뒤부터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며 이때 가져다
놓은 반석이 호혈석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