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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경주 박물관 역사관과 미술관이 새로 꾸며 졌네요. 개인적으로는 시대 흐름에 따라 자연스런 동선이 마음에 드네요. 3실에서 처음 만나는 유물은 포항 중성리 신라비입니다. 전에는 모조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제는 진품으로 바꿔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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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쾌적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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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이나 탁본 등으로 대체 하던 전시물 들은 거의 없어지고 실제 유물들로 대체 전시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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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있었던 이양선박사 기증품 전시관은 역사관 4실로 옮겨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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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도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크게 변한것은 엢습니다. 시간 되시면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별관에서는 유리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고문화연구회 교육때 들었던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손잡이가 금으로 보수된 국보도 전시 되어 있습니다. 중박에서나 볼수 있었는데 경주에서 보니 반갑네요.
특별전 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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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네이버 백과에서 캡쳐
고찬이(高讚伊)는 고종12년(1875년) 포항시 청하현 화진리에서 태어났다.
그 가문은 알수 없으나 어렸을때부터 학문에 힘써 많은 병서를 읽고 익혔으며
체력이 장대하여 역사로서 인근면동에 그 용명(勇名)이 자자하였다.
구한말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침략을 노골화 하여 사실상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뜻한바 있어 대한제국군에 투신하여 대구진위대(鎭衛隊) 오장(伍長)으로 근무하였다.
순종원년(1907년) 일제와 역신들이 모사(謀事)하여 한국군 해산을 단행하였다.
국군해산에 대하여 의분(義憤)을 참지 못하고 귀향하는 도중에 만난 산남의진(山南義陣) 소모장(召募將)
정순기(鄭純基)가 영남항왜의병총본영(嶺南抗倭義兵總本營)인 산남의진에 투신할것을 권장(勸奬)하여 입대하였다.
정환직대장 지도하에 소모장(召募將)으로 의병활동을 하면서 전투마다 용감(勇敢)하고 전공이 대단하여
정대장은 첫째도 고찬이 둘째도 고찬이 하며, 신분은 일개 신입 소모장이나 참모급으로 대하고
중요한 군사전략회의에 참석시키는등 십분 그 의견을 존중하니 이로 인하여 오만무례(傲慢無禮) 하여져
다소 군율을 위반(違反) 하는 사례가 있었으나 정환직대장은 인재부족의 국난시기라는 이유로 관용으로
대하여 이를 어루만져 지도애호(指導愛護)함이 친부자와 다름이 없어 진중(陣中) 장정들도 고찬이를
선망(羨望)하는 정도였다.
정미 10월 영덕(盈德) 도천(道川)숲에서 야영중 불시에 왜병이 내침(來侵)하여 피아열열한 전투가 벌어져
왜병은 소수의 병력으로 내공하다가 의외에도 의병측의 강열한 대항에 부딧치어 후퇴하기 시작하므로
대장 정공은 고찬이에게 1초대(哨隊) 병력을 주어 왜병의 퇴로를 차단하라고 명령하였으나
고찬이는 이 치열(熾烈)한 전투중에 명령에 불복하고 행동을 지연(遲延)시켜 왜병전원을 토벌(討伐)치
못하여 진중(陣中)이 통분(痛憤)하였다. 대노(大怒)한 부하(部下) 각급 참조진이 고찬이의 군율불복종을
군법회의에 회부하고 군율을 바로잡기 위하여 만부득이 총살형에 처하여 후장(厚葬)하였는데
정환직 대장은 삼일간이나 음식을 전폐하고 방문통기(放䎹痛器)하면서
삼국지 제갈공명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을 이제 알았노라고 하더라. -일월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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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당리 기원정사 (구왕룡사)
별다른 계획 없이 연휴를 보내고 있다. 30도를 넘는 한여름 같은 날씨에 잠시 나들이 삼아 왕룡사에 들려 보았다.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의 전설이 전해 지고 있는 곳이고 어떠한 연휴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1466년에 팔공산 미륵사에서 조성된 조선초기 목불상이 있는 곳이다.
경주박물관 (0) | 2021.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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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편액의 의미 (0) | 2019.08.19 |
玉山書院記
陜川郡守權公德麟 晦齋李先生
之學徒也隆慶六年季秋以書來曰爲
先生起書院其記始末且名齋舍哉曄
受而藏之疾病遷延未卽起草萬曆癸
酉冬先生之孫浚來傳權君已下世爲
之驚悼少年志學之士遽至於是噫是
何司命也感念亡友之囑謹寫拙詞以付李
君之還竊惟 先生之德容 幸及瞻睹於
游泮之日 先生之德行又得備聞於退
溪所撰行狀景慕而仰歡者久矣嘗見
大明一統志程朱所過一憩馬 一嘯咏之地 無不
起書院 好賢之無已 有如是者 況先生之
所棲遲做業者乎府尹李俊齊閔採鄕十
三之願躬卜定其墓告于監司請建書院出
其庫餘以主其費鄕老儒士亦盡其力壬申
二月始事八月訖功則祠宇與講堂曁東西兩
齋及乎前樓摠四十餘間旴盛矣哉慶州安
康縣之良佐洞卽先生之居也洞之四十五
里有紫玉山 先生建別墅 以爲遊息藏修
之所 有濯纓澄心觀魚洗心等臺 皆先生
所題目而常逍遙自樂者也今之書院正當
洗心臺之上上下龍湫澄泓可愛予雖未得躡
斯境而遽權公之示以竦然興起矣予雖未及
摳衣於 先生之門而聞 先生之語 得見心
經附註 竊自尊之以爲吾之師矣遂名其東
齋曰敏求取孔子所訓好古敏以求之之意也
其西齋曰闇修 取朱子自贊中闇然而日修
之義也樓曰納淸淸者氣也氣者陽也登斯樓
者納淸而養陽 養陽而凝道 斯其具也萬曆
癸酉 賜額玉山書院 依然朱子講義之地
名號之美 斯文之光可謂至矣嗟夫予衰且
病 無由一入院中瞻拜祠宇得與鄕士者講
明先生之正學 以致提撕驚覺之事 徒爲
東望悵悵而已惟願士子之居是院者感府尹
營建之意 思先生棲息之所不但慕其道
德之高厚而且學其深潛縝密之功 不但學
其深潛縝密之功而且礪其篤實堅確之志
則 先生之鄕 永爲鄒魯之多士而我
國家取材而經世者益悠遠而無窮矣豈不于
先生有光哉嗚呼可不勉哉萬曆甲戌孟春
通政大夫成均館大司成知製敎場川許曄
謹記
합천 군수 권덕린 공은 회재 이선생의 제자이다. 융경 6년(1572) 늦가을에 (권덕린이) 서신을 보내어, 선생을 위해 서원을 건립하여 그 시말을 기록하고 또 齋舍의 이름을 지어야 합니다. 고 하였다. 허엽이 이 서신을 받아 간직해 두고는 병을 알아 시일만 끌면서 즉시 초를 잡지 못하였다. 만력 계유년(1573) 겨울에 선생의 손자 이준이 와서 권군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였으므로 그를 위해 애도하였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둔 선비였는데,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으니, 아! 이것이 무슨 운명인가? 죽은 벗의 부탁에 감회가 있어, 삼가 졸렬한 말을 써서 이군이 돌아가는 편에 부친다.
가만히 생각건대, 선생의 덕용을 다행히 엽이 성균관에 드나들 때 뵈었고, 선생의 덕행을 또 퇴계 선생이 지은 행장에서 자세히 보고서 선생을 경모하며 우러러 찬탄한 지기 오래되었다. 일찍이 대명일통지를 보니 정자와 주자가 지나가면서 한 번 말을 쉬거나 한 번 읊조린 곳마다 서원을 세우지 않는 곳이 없었다. 어진 이를 좋아함이 그치지 않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하물며 선생이 머물며 학업을 닦은 곳이겠는가? 부윤 이제민이 그 고을의 13가지 소원을 채택하여 그 터를 정해 놓은 다음, 감사에게 보고하여 서원을 건립할 것을 청하였다. 창고의 남는 것을 출연하여 그 비용을 채우고 鄕老와 儒士 또한 그 힘을 다하였다. 임신년(1582) 2월에 일을 시작하여 8월에 공사를 마쳤는데, 祠宇와 강당 및 동재와 서재, 前樓에 이르기까지 도합 40여 칸이니, 아! 성대하도다.
경주 안강현의 양좌동은 바로 선생이 거쳐하셨던 곳이다. 그 동네 서쪽 15리에 자옥산이 있으니, 선생이 별장을 짓고 遊息과 藏修의 처소로 삼은 곳이다. 거기에 탁영, 징심, 관어, 세심 등의 臺가 있는데 모두 선생이 이름을 붙이고 항상 소요하며 스스로 즐기시던 곳이다. 지금의 서원은 바로 세심대 위쪽에 있으니, 上下 용추의 맑고 깊음이 좋아할 만하다. 내가 비록 그것을 답사하지 못하고 권공이 보여준 것에만 의거하였으나, 이미 송연히 흥기하였다. 내가 비록 선생의 문하에서 스승으로 모시고(摳衣) 선생의 말씀을 듣지는 못하였으나, (선생의) 심경부주를 보고 나도 모르게 스스로 존경하여 나의 스승으로 삼았다. 드디어 동재 왈, 민구라 한 것은 공자가 가르친바, 옛것을 좋아하여 급급히 그것을 구하였다 는 뜻을 취한 것이며, 서재 왈, 암수라고 한 것은 주자의 자찬 중에 잠잠히 날마다 수양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누 왈, 납청루라 하였으니 淸이라는 것은 氣이고 氣는 陽이다. 이 누각에 오르는 자는 淸을 받아들여 陽을 보양하고, 陽을 보양하여 道를 응결함이 여기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만력 계유년(1573)에 산서원이라고 사액하니, 의연히 주자가 강의하던 지명과 같다. 名號의 아름다움과 斯文의 빛남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다. 아! 나는 쇠약하고 병이 들어 한 번도 이 서원으로 가서 祠宇를 우러러 절하고 그 고을 선비와 더불어 선생의 바른 학문을 강론하여 밝혀 진작하고 경각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고, 한갓 동쪽을 바라보며 서글퍼할 따름이다. 오직 바라건대, 이 서원에서 거처하는 선비들은 부윤이 이 서원을 세운 뜻에 감격하고 선생이 머무르던 곳임을 생각하여 선생의 도덕이 高厚함을 사모할 뿐만 아니라 그 심원하고 치밀한 공부를 하고, 그 심원하고 치밀한 공부를 할 뿐만 아니라 그 독실하고 견고한 뜻을 힘쓴다면 선생의 고향은 영원히 훌륭한 선비들이 많은 鄒魯가 될 것이며, 우리 국가에서 인재를 취하여 세상을 경륜하는 것이 더욱 悠遠하고 무궁하게 될 것이다. 어찌 선생에게 영광이 되지 않겠는가? 아! 힘쓰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영덕 도천리 도천숲과 읍참마속(泣斬馬謖) (0) | 2020.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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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당리 왕룡사 (0) | 2020.05.02 |
옥산서원 치제문-정조 (0) | 2019.08.19 |
옥산서원 편액의 의미 (0) | 2019.08.19 |
玉山書院 院規(옥산서원 원규) (0) | 2019.08.19 |
● 玉山書院致祭文 옥산서원(玉山書院) 치제문 -정조(正祖)
挺生間氣. 繼開邃學. 不由師承. 直溯閩洛. 大人契合. 三朝有聖. 經之緯之. 禮樂刑政. 賦鵩西荒. 鳥道峋嶙. 薑辢之性.
在處動忍. 肯隨人化. 炳若忠赤. 障川砥柱. 閱劫炯玉. 公議大定. 不俟乎百. 太室文廡. 次第配食. 矧予曠感. 尤倍是日.
正道榛蕪. 異端猖獗. 嶠俗獨超. 儒化之曁. 山斗蓍龜. 朝暮寤寐. 承宣銜命. 玉岑之麓. 引領南望. 萬懷一酌.
특별히 세상에 드문
기운을 지닌 대현을 낳으니 / 挺生間氣(
지나간 성인을 잇고 후세의 학자를 열어 준 깊은 학문이 / 繼開邃學
스승으로부터 배움을 말미암지 않고 / 不由師承
곧바로 민락으로 거슬러 올라갔네 / 直溯閩洛
대인의 덕에 서로 합하니 / 大人契合
내리 세 성군(聖君)의 시대에 / 三朝有聖
좌우로 왕정을 도운 것이 / 經之緯之
예악과 형정이었네 / 禮樂刑政
서쪽 변방 강계(江界) 땅으로 귀양을 가게 되어 / 賦鵩西荒
날아다니는 새나 지날 듯한 험한 산길을 넘으니 / 鳥道峋嶙
생강처럼 강직한 성품으로 / 薑辢之性
처한 곳을 따라 힘든 가운데 심성을 길렀네 / 在處動忍
기꺼이 다른 사람을 따라 변하지 않아 / 肯隨人化
충성의 마음 붉은 것이 빛나는 듯했으니 / 炳若忠赤
거센 대천(大川)을 막는 지주가 되어 / 障川砥柱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찬란한 옥이었네 / 閱劫炯玉
공의가 크게 정해지니 / 公議大定
백 년을 기다리지 않고 / 不俟乎百
태실과 문묘에 / 太室文廡
차례로 배향되었네 / 次第配食
더구나 나는 광세(曠世)의 감회가 / 矧予曠感
이날에 더욱 배로 더하니 / 尤倍是日
정도가 어지럽게 막혀서 / 正道榛蕪
이단이 창궐하였네 / 異端猖獗
교남(嶠南)의 풍속이 홀로 뛰어나 / 嶠俗獨超
유학의 교화가 미쳤으니 / 儒化之曁
태산북두처럼 믿고 시귀로 여기는 마음에 / 山斗蓍龜
조석으로 자나 깨나 잊지 못하네 / 朝暮寤寐
승선이 명을 받들어 / 承宣銜命
자옥산(紫玉山) 기슭으로 가기에 / 玉岑之麓
목을 빼어 남쪽을 바라보고 / 引領南望
만단 심회를 한 잔 술에 깃들이네 / 萬懷一酌
국당리 왕룡사 (0) | 2020.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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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기- 허엽 (0) | 2019.08.19 |
옥산서원 편액의 의미 (0) | 2019.08.19 |
玉山書院 院規(옥산서원 원규) (0) | 2019.08.19 |
어버이날 대명공원 (0) | 2019.05.12 |
○ 祝文
學問淵深 道德高厚 啓佑後人 享祀悠久
○ 축문
학문은 심오하고 도덕은 고상하여 후인을 계도 하였으니 享祀가 영구하다.
○ 體仁墓銘
生物之春 在我爲仁 體之以身 何不長人
○ 체인묘명
만물을 낳는 봄이 나에게 있어서는 仁이니 몸으로써 체득한다면 어찌 남을 자라게 하지 아니하겠는가?
○ 求仁堂銘
心德何損 放而曰遠 一念知反 卽此是本
○ 구인당명
마음의 덕이 어찌 줄어들겠는가? 놓아두고서 왈, 멀다 한다. 한 번 생각하여 돌이킬 줄 알면 곧 이것이 바로 근본이다.
○ 兩進齋銘
擇善惟明 反身惟誠 孰重孰輕 聖賢同行
○ 양진재명
선을 택함은 밝아야 하고 자신을 반성함은 성실하게 하여야 하니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가벼운가? 성인과 현인이 함께 한다.
○ 偕立齋銘
敬直義方 內外交相 惟操不忘 天德之光
○ 해립재명
안으로 敬하고 밖으로 義하여 안과 밖이 서로 도와 굳게 잡아 잊지 않아야 天德이 빛난다.
○ 無邊樓銘
靡欠靡餘 罔終罔初 光歟霽歟 遊于太虛
○ 무변루명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으며 끝도 없고 처음도 없다 광풍제월이여 태허에 노니 도다.
○ 東岳 李安訥 無邊樓詩
萬古山傳紫玉名 海東夫子晦先生 無邊樓下梧桐月 常得當年意味淸
만고에 자오산 이름 전하니, 해동의 부자는 회재 선생이다. 무변루 아래 오동나무에 달이 비치니, 당시에 선생의 맑은 의미를 상상할 수 있도다.
○ 亦樂門銘
聞風卽回 望道而來 不亦樂哉 邦之英材
○ 역락문명
風俗을 듣고 곧 돌아오고, 도를 바라보고 왔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나라의 영재들이여!
銘皆盧蘇齋守愼所題也
명은 모두 소재 노수신이 지은 것이다.
無邊樓(무변루): 주돈이의 風月無邊에서 따 왔다고 함. 중국 후난의 악양루에 누군가가 적어둔 일충이(一䖝二) 세 글자에 대해 당나라 시인 이백의 풀이를 한 것이다. 일은 수천일색(水千一色)이요 충이는 풍월무변(風月無邊)이다. 즉 風(풍)과 月(월)의 두 자의 외곽을 떼어 버리면 虫二(충이)라는 두 글자가 남게 됨. 경계가 없이, 다함이 없이 아름답다는 의미가 풍월무변
민구재(敏求齋): 민첩하게 진리를 구한다,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의미
암수재(闇修齋):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묵묵히 수양한다'
擇善惟明及身惟誠訙重訙軴聖賢同行
양진재(兩進齋): 명(明)과 성(誠)을 뜻하는 것으로 두 방향 다 추구함, 교수와 유사(有司)들이 기거하던 방
해립재(偕立齋): “함께 서자”, 해립재 현판 옆에 작은 글씨도 유생들은 한 치 흔들림 없이 "경(敬), 직(直), 의(義)를 내외로 굳게 하고 서로 나누며, 하늘의 빛나는 덕을 잊지 말고 지키라(敬直義方內外交相 惟操弗忘天德之光)"고 했다.
다른 서원의 강당과 달리 온돌방 앞에 툇간이 없고 문도 없다. 감시하지 않는다. 스스로 하라는 의미
회재의 사상은 인(仁)이다. : "천만권 경전과 서적들이 오로지 '인'(仁)을 떠들고 있으나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개탄
● 玉山書院諸額贊 -노수신(盧守愼)
體仁廟: 生物之春。在我爲仁。體之以身。何不長人。
求仁堂: 心德何損。放而曰遠。一念知反。卽此是本。
兩進齋: 擇善惟明。反身惟誠。孰重孰輕。聖賢同行。
선을 선택함에 명확하게 하고, 자신을 반성함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어느것이 중요하고 어느것이 가벼운가 하는 것을 성현과 같이 해야 한다.
양진(兩進)은 “명과 성을 다 갖추어, 明으로 도덕을 밝히고, 誠으로 의지를 성실하게 한다.
偕立齋: 敬直義方。內外交相。惟操弗忘。天德之光。
“경은 바르고 의는 방정하니 안과 밖이 서로 교섭한다. 오직 이것을 붙잡아서 잊지 않으면 천덕이 빛나리라(敬直義方 內外交相 惟操弗忘 天德之光 경직의방 내외교상 유조불망 천덕지광).”라고 되어 있다.
이것으로 그가 내적 규범으로서의 경을 중시함과 똑같은 비중으로 외적 규범으로서의 의를 중시하여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無邊樓: 靡欠靡餘。罔終罔初。光歟霽歟。游于太虛。
亦樂門: 聞風則回。望道而來。不亦樂哉。邦之英才。
옥산서원기- 허엽 (0) | 2019.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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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치제문-정조 (0) | 2019.08.19 |
玉山書院 院規(옥산서원 원규) (0) | 2019.08.19 |
어버이날 대명공원 (0) | 2019.05.12 |
문경 가인강산 (0) | 2019.03.03 |
玉山書院 院規
一 諸生讀書以四書五經爲本原小學家禮
爲門戶遵
國家作養之方守聖賢親切之訓 知萬善
本具於我 信古道可踐於今皆務爲躬行
心得明體適用之學 其諸史子集文章科
擧之業 亦不可不爲之旁務博通然當知
內外本末輕重緩急之序常自激昂 莫令
墜墮自餘邪誕妖異淫僻之書 並不得入
院近眼 以亂道 惑志
一 諸生立志堅苦趍向正直業以遠大自期
行以道義爲歸者爲善學其處心卑下取
捨眩惑知識未脫於俗陋意望專在於利
欲者爲非學如有性行乖常非笑禮法侮
慢聖賢詭經叛道醜言辱親敗群不率者
院中公議擯之
一 諸生常宜靜處各齋專精讀書非因講究
疑難不宜浪過他齋虛談度日以致彼我
荒思廢業
一 無故無告切無頻數出入凡衣冠作止言
行之間各務切偲相觀而善
一 泮宮明倫堂書揭伊川先生四勿箴晦菴
先生白鹿洞規十訓陳茂卿夙興夜寐箴
此意甚好院中亦宜以此揭諸壁上以相
規警
一 一日謹祀二日禮賢三日修宇四日備廩
五日點書夫不謹則祀不享不禮則賢不
至宇不修則必壞廩不備則必匱書不點
則必散五者不可以廢一也斯文統檢有
司監掌
一 別擇業文信愼者一人爲院長又擇一人
爲貳共院事
一 凡人院之士司馬則如入大學其次初試
入格雖非初試入格其一心向學有操行
而願入者有司稟干斯文許入夫開院固
欲迎賢若濫入則不肖者問之非徒耗廩
將有損書冊什物愚者至而賢者必不肯
來亦荒廢廟院之一漸也. 其擇尤不可不
謹也.
一 別置入院錄凡入院之士必自錄姓名且
記其來寓年月夫題名者豈偶然哉後來
者必披案歷指曰某也學而爲己某也學
而爲人某也生而有愧某也沒而無怍其
窮達雖殊而賢愚亦遠可不勉乎可不懼
乎
一 邑宰子弟不得留滯貽弊不得擅便書冊
一 禁射侯遊宴
一 復守直之家人不得役官不得奪
一 凡院所屬非公事公物私使
一 凡院生春秋享祀時無故不參者斯文重
罰
一 凡主院事者或當任不謹或典守不廉斯
文共譞黜之
一 院書冊及器用㘦勿出院門
凡夫冠者㘦勿許入齋舍以致毀瓦畫墁
點汚書冊事
玉山書院院規
一諸生讀書以四書五經爲本原小學家禮爲門戶
유생들이 독서하는 데는 사서오경을 근본으로 삼고, 소학과 가례를 문호로 삼아
遵國家作養之方守聖賢親切之訓知萬善本具於我信古道可踐於今
나라에서 양성하는 방법을 따르고, 성현의 친철한 가르침을 지키고 만 가지 선한 것이 본래 내게 있음을 알고, 옛 도리가 현재도 실천가능함을 믿어서
皆務爲躬行心得明體適用之學其諸史子集文章科擧之業亦不可不爲之旁務博通
몸으로 행하고 마음으로 체득하는 것에 힘써, 체를 밝히고 용을 적합하게 배우고 제사자집 문장 과거의 업도 또한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옆으로 널리 통하도록 힘쓸 것이나,
然當知內外本末輕重緩急之序常自激昂莫令墜墮
마땅히 내외 본말 경중 완급의 차례를 알아서 항상 스스로 격려하여 타락하지 않게 하고,
自餘邪誕妖異淫僻之書並不得入院近眼以亂道惑志
그 나머지 사특하고 요망하고 음탕한 글은 모두 원내에 들이어 눈에 가까이 도를 어지럽히고 뜻을 미혹하게 하지 못한다.
一諸生立志堅苦趍向正直業以遠大自期行以道義爲歸者爲善學
유생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뜻이 굳세고 취향이 정직하며, 원대한 곳에 학업의 목표를 두며, 도의로서 실천의 귀착점으로 하는 사람은 좋은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이다.
其處心卑下取捨眩惑知識未脫於俗陋意望專在於利欲者爲非學
만약 마음을 비천한데 두고, 행동하는 것이 남을 현혹시키며, 아는 것이라 해도 속되고 비루한 것을 벗어나지 못하며, 마음은 오로지 자기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는 데만 가 있는 사람은 나쁜 것을 배우는 사람이다.
如有性行乖常非笑禮法侮慢聖賢詭經叛道醜言辱親敗群不率者院中公議擯之
만약 행실이
괴상하여 예법을 비난하고 웃어넘기며, 성현을 모독하고 업신여기며, 올바른
길을 속이며, 도의를 배반하며, 추한 말로 부모를 욕되게
하며, 여러 사람을 괴롭히고 예법을 지키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院에서 다 함께 의논하여 그런 사람을 물리쳐야 한다.
一諸生常宜靜處各齋專精讀書非因講究疑難不宜浪過他齋虛談度日以致彼我荒思廢業
유생들은 항상 조용히 각 방에 거처하면서 오로지 독서에 정력을 쏟을 것이며, 의심나고 어려운 것을 강론하고 궁구하는 일이 아니라면, 부질없이 다른 방에 가서 쓸데없는 이야기로 허송 세월하며, 피차간에 생각을 거칠게 하거나 학업을 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一無故無告切無頻數出入凡衣冠作止言行之間各務切偲相觀而善
아무 까닭도 없이 자주 출입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의관과 용모와 행동거지와 언행에 각기 서로 잘 보살펴 선행에 힘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一泮宮明倫堂書揭伊川先生四勿箴晦菴先生白鹿洞規十訓陳茂卿夙興夜寐箴此意甚好院中亦宜以此揭諸壁上以相規警
성균관의 명륜당에 정이천 선생의 사물잠, 희암 선생의 백록동규의 십훈 그리고 진무경의 숙흥야매잠을 써서 걸었는데, 이 뜻이 매우 좋으니 원중에서도 이것을 써서 벽에 걸어 놓고 서로 타이르고 일깨워야 한다.
一一日謹祀二日禮賢三日修宇四日備廩五日點書夫不謹則祀不享不禮則賢不至宇不修則必壞廩不備則必匱書不點則必散五者不可以廢一也斯文統檢有司監掌
제사를 경건히 봉행할 것. 어진 이를 예우할 것. 사당을 잘 보수할 것. 물자를 비축할 것. 서책을 점검할 것.
제사를 경건히 봉행하지 않으면 신이 흠향(歆饗)하지 않고, 예우하지 않으면 어진 이가 오지 않고, 사당을 잘 보수하지 않으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고, 물자를 비축하지 않으면 반드시 곤궁한 상태를 맞게 되고, 서책을 점검하지 않으면 반드시 흩어져 없어지게 된다. 이 다섯 가지는 하나라도 폐지해서는 안 된다. 사문(斯文)은 모든 것을 살피고 유사(有司)는 맡은 바를 감독한다.
一別擇業文信愼者一人爲院長又擇一人爲貳共院事
특별히 학문이 종사하고 믿음과 신중한 이 한 명을 선택하여 원장을 삼고 또 한 명을 선택하여 부원장으로 삼아 함께 서원의 일을 주관한다.
一凡人院之士司馬則如入大學其次初試入格(者) 雖非初試入格(者) 其一心向學有操行而願入者有司稟干斯文許入夫開院固欲迎賢若濫入則不肖者問之非徒耗廩將有損書冊什物愚者至而賢者必不肯來亦荒廢廟院之一漸也. 其擇尤不可不謹也.
무릇 서원에 들어오는 선비는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한다. 그 다음은 초시 합격자로 한다. 비록 입격하지 못 하였어도 한 마음으로 학문에 뜻을 두어 태도와 행실이(操行) 바른 사람으로 들어오기를 원하는 자는 유사가 斯文(유학을 깊이 연구하여 높은 경지에 오른사람)에 아뢰고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
서원을 열면 반드시 현인을 맞이하여야 한다. 만약 함부로 들이면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섞이게 되어 단지 창고의 물건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장차 책 등의 여러 물건도 손실이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가 이르면 현인들이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또한 서원이 점점 황폐해질 것이다. 그 선택을 더욱 삼가지 않을 수 없다.
一別置入院錄凡入院之士必自錄姓名且記其來寓年月夫題名者豈偶然哉. 後來者必披案歷指曰某也學而爲己某也學而爲人某也生而有愧某也沒而無怍其窮達雖殊而賢愚亦遠可不勉乎可不懼乎
입원기록을 따로 두어 서원에 들어오는 모든 선비가 반드시 스스로 그 성명을 적게 하고 또 그가 와서 머문 해와 달을 기록한다. 이름을 적는 것이 어찌 그냥 한번 해 보는 것이겠는가. 나중에 온 자는 반드시 그 명단을 뒤적여 보며 지적하면서 아무개는 자기를 위해 공부한다. 아무개는 사람을 위해 공부한다, 아무개는 삶에 부끄러움이 있다, 아무개는 죽어서도 부끄러움이 없다 할 것이다. 비록 그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만 현명함과 어리석음도 반드시 큰 차이가 있으리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며 힘쓰지 않으랴.
一邑宰子弟不得留滯貽弊不得擅便書冊
고을 수령의 자제가 이곳에 머물면서 피해를 끼치게 해서는 안되고, 서적을 마음대로 다루게 해서도 안 된다
一禁射侯遊宴
활쏘기와 연회를 금한다.
一復守直之家人不得役官不得奪
역이 면제되어 서원을 지키는 사람을 관아에서 빼앗을 수 없다.
一凡院所屬非公事公物私使
서원 소속의 물건을 개인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一院生春秋享祀時無故不參者斯文重罰
봄과 가을의 제사에 무단으로 참석하지 않았을 경우 중하게 벌을 준다.
一凡院事者或當任不謹或典守不廉斯文共譞黜之
서원의 일을 하는 자는 소임을 다해야 하나 성실하지 않아 경전을 지킬 수 없다면 청렴한 사문과 함께 현명하게 살피어 내쳐야 한다.
一院書冊及器用㘦勿出院門
책이 서원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凡夫冠者㘦勿許入齋舍以致毀瓦畫墁點汚書冊事
관료가 재사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면 기와가 훼손되고 벽에 금이 가므로(보탬은 없고 해만 끼침) 책이 더러워 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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