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수덕사 대웅전(국보 49호, 충렬왕34, 1308 )은 고려시대 목조 건물 가운데 안동 봉정사 극락전 (국보15호)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18호)에 이어 오래된 고려후기 건물로 한국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강한 배흘림 기둥을 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주심포계 11량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시원스럽고 단아한 주칸에 섬세한 빗살 분합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경우 약식 가구식 기단으로 여말선초의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ㅅ'자 맞배지붕은 단정하고 간결하고 힘차다. 허리 살짝 부푼 배흘림기둥과 곡선이 살아있는 공포는 아름답다. 어느 건축가의 말. '건축 부재는 아름다움이 목적이 아니라 쓰임새의 결과로 아름다울 뿐이다.' 대웅전 측면과 후면은 정면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뭐랄까, 정면이 옷 여민 엄숙함이라면, 측면과 후면은 단추 푼 편안함이랄까. 기둥과 들보가 이음과 맞춤으로 서로에게 의지해 완전한 면분할을 선사한다. 대웅전의 측면의 모습은 사진작가들이나 문화재 답사객들의 필수코스로 여겨질 만큼 아름답다. 석가모니불의 수미단은 육각과 장방형으로 각기 구성하고 있는 대좌형으로 국내에서는 유일한 수미단으로 공예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이다.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심원사 대웅전의 수미단과 그 장엄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금강저, 삽화병, 모란, 운파등 안상조각에서 고려시대 수미단의 특징을 살필수가 있다. 특히 이 수미단의 기초는 일반형 탁자와 달리 대웅전 마루 아래 30cm 지점의 초기 평면과 동일하며 그 곳에서부터 육각의 저대석이 탁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웅전 건립 연대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안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전적류, 후령통(喉鈴筒) 및 오색실, 복식 등이 있다. 전적류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묘법연화경』, 『대방광언각수다라요의경』, 『불설관세음경』 등의 경전과 진언문, 다라니로서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판본이 주를 이룬다. 후령통 안에는 각각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5색의 사각형 직물 안에 원형, 금강저, 삼족(三足)과 육족(六足)의 번(幡)을 의미하는 형태의 직물이 들어 있었다. 오색실은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하는 청색·백색·홍색·자주색·황색의 실이다.
수덕여관: 수덕사 일주문 왼쪽 숲에 터 잡은 수덕여관은 지어진 시기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고암의 본부인 박귀희 여사에겐 전부였음은 분명하다. 고암이 1944년 여관 사들인 후 박 여사 두고 프랑스로 떠났을 때도, 고암이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를 때도, 고암이 옥살이 후 요양할 때도 박 여사는 여관과 고암을 돌봤다. 박 여사의 곡진한 챙김에도 고암은 다시 파리로 떠났다. 짧았던 봄날 붙들고 여관 지킨 박 여사는 2001년 눈을 감았다. 고암이 수덕여관 요양 시절 앞뜰에 암각화를 남겼다. 한글 자모 뒤엉킨 듯한 추상화였다. 고암은 "이게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했단다. 하긴 엉키지 않은 삶이 어디 흔한가, 그래서 산다는 건 흔들리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는지. 참, 수덕여관은 경매에 붙여져 지금은 수덕사 문화 전시공간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