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의(仁義)와 충의(忠義)가 서린 집 - 낙선당
중요민속자료 73호인 낙선당은 서백당 입향조 양민공 손소의 셋째 아들이며 우재 손중돈의 바로 아래 동생인
망재(忘齋) 손숙돈이 1540년경에 서백당에서 분가해서 지은 집이다.
그 후 양민공의 5대손 낙선당 손 종노 선생이 매입해서 살던 곳으로 이 집의 당호인 낙선은 맹자의 " 인의와
충신으로 선을 즐겨 게으르지 않는 낙선불권(樂善不倦)을 천작(天爵)이라고 한다" 에서 따온 말이다.
낙선당 손종노 선생은 현직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면학에 힘쓰던 중에 병자호란으로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국의 일념으로 노구의 몸으로 노비 억부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지금의
경기도 광주 쌍령전투에서 최후를 마친 충신이다. 당시 억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으나 억부는
"주인이 나라의 녹을 먹었으면 하인도 녹을 먹은거나 마찬가지다" 라며 주인과 함께 최후를 마쳤다.
지금 양동마을을 들어서면 관가정 아래에 있는 정충비각과 옆의 작은 비각은 충신 손종노 선생과 충노(忠奴)
억부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각이다.
설창산을 배산으로 남향으로 매김 질 된 안채는 전형적인 영남지역의 사대부집의 모습이지만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사랑채는 동쪽의 성주봉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동쪽이 트여진 'ㄷ'자로 지어서 성주산의 빼어난 기운을
사랑 마당으로 끌어 들이고, 남쪽 대문은 멀리 보이는 경주 방향의 형제봉을 집으로 불러 들이고 있다.
높은 위치에 자리하여 주변 자연과의 조화는 빼어나지만 안채로 들어가는 산줄기의 기운이 약한 것이
이 집의 부침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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