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이정표만 보고 들어갔다.
효조왕 원년(692)에 세워진 황복사지 삼층 석탑..국보 37호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였지만 크기는 절반정도 된다.
황복사는 의상대사가 출가한 사찰이며 삼국유사에는 의상대사가 제자들과 더불에 허공에 떠서
탑돌이를 했다는 내용이 전해온다.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해체수리 되었는데 2층 옥개석에서 사각형의 사리공안에 사리장치가
들어 있었는데 사리장치안에 불상2구를 비롯한 각종 국보급 문화재가 다수 있었다고 한다.
그대로 다시 봉안하지 않고 박물관으로 옮겨오자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모여 들더니
천둥번개가 치며 장대같은 비를 퍼부으니 해체를 주도했던 일본학자들이 새파랗게 질렸다고.....
사진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하층기단 갑석위에 뱀의 허물이 있었다..
지난번 나원리 오층석탑에서는 하층기단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구렁이 (적어도 50cm 이상되는)를
보았는데...앞으로 탑 근처에 얼씬거리기가 힘들것 같다.. -.-
하층기단 갑석은 대충봐도 균형있는 삼등분인데 하층기단갑석은 크기가 제각각....
돌이 없었던 것도 아닐테고 왕명으로 건립되었으니 돈이 없었던것도 장인들의 실력이
모자란것도 아닐텐데...그렇다고 조형미를 강조한것 같지도 않고....무슨이유로....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탑을 보면 그냥 돌덩이 몇개 쌓아 올린 것 외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것 저것 주워 듣다 보니 자꾸 새로운게 보이고.. 그러면 또 궁금해지고..그렇다고 이게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알아주는것도 아닌데 뭐하는 짓인지....흠.......
황복사 삼층석탑 사리함 뚜껑에서 나온 명문에 의하면 신문왕의 추복을 위해 아들 효조왕이 황복사
경내에 삼층석탑을 건립했다고 한다.
이 석탑에서 동쪽으로 250미터 떨어진 지점에 신문왕릉이 있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방향을 모르니......
탑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진평왕릉으로 전해지고 있는 능이다.
사리장엄구에는 네모난 청동함 안에 은합과 금합을 여려 겹으로 중첩한 사리기와 함께 순금제의 불상 두 점이 발견되었다. 청동함에는 99개의 소탑을 장식한 것은 중국에서 번역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한 조탑 신앙이 신라에 전파된 것을 밝혀주는 최초의 예이다. 조탑신앙은 돌을 쌓아 마을의 들어오는 액을 막고 나가는 복을 막는 민간신앙이다.
'탑과 부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원리 오층석탑 (0) | 2015.10.01 |
---|---|
경주 감산사지 삼층석탑 (0) | 2015.09.30 |
동화사 대웅전 옆 삼층석탑 (0) | 2015.05.26 |
법광사지 삼층석탑 (828) (0) | 2015.05.26 |
9세기 석탑의 특징 (0) | 2015.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