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1리 비로자나 불좌상

 

아혜현기가 있던 마을로서 신라가 점유하여 화방으로 현기를 옮겨갈 때까지 이 지역의 중심 마을이었다. 옛날 달골에는 금광이 있었고, 마을 북동 산골짜기에 금씨골이란 지명이 있고, 고려 때에는 김해부곡을 , 조선조에는 금정원을 두었으며, 쇠발골에 향교가 있었는데 숙종 39년 (1973년) 덕성리로 옮겨갔다. 풍수서인 성지비결(性智秘訣)에 의하면 청하면 금정리(현 서정1리)는 물위에 뜬 금바가지 형국이라 하여 금호(金湖)라고 불렀다. 그런데 고려 초, 어느 날 한 절름발이 누이와 소경인 오빠가 이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목이 말랐던 남매는 마을 어귀에 있던 샘을 찾았다. 누이는 오빠에게 먼저 물을 떠 주고나서 자신이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는데 번쩍이는 황금 덩어리가 그 속에 있는 것이었다. 엉겁결에 “금 봐라” 고 소리를 쳤다. 이 소리에 놀란 오빠가 눈을 번쩍 떴는데 그만 앞이 환하게 열리며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현감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남매의 우의를 칭찬하고, 샘의 이름을 금정이라고 붙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의 이름도 이에 따라 부르다가 1914년 금호, 감정, 밤나무지이, 모과장등의 자연부락과 합하여 서정리라 하고 1, 2, 3동으로 분동하였다. 마을 어귀엔 비로자나불이 있는데 두부는 파손되었다. 그 옆에 고려 때 성도사라는 작은 절이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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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위치는 서정리 아방사지에 있었던 불상으로 불두는 사라지고 둥근 돌을 올려 놓았다. 아방사는 창건연대는 전하지 않으나 임진왜란의 전화로 폐사되었다고 한다. 대좌도 석불대좌는 아닌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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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가 길고 어깨가 협소하고 무릎이 크며 발목이 가늘다. 통견임에도 불구하고 옷주름이 촘촘한 형태는 900년 후반에서 1022년(경주 용장사지 마애불좌상) 사이에 많이 나타나므로 이 불상은 1000년대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대석의 안상안에 사자상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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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 불상의 조성

 

- 산청군 내원사 석조비로자나 불상 766년 - 동양최초

- 장흥 보림사(寶林寺) 철조비로자나불(858년),

-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863년경),

- 각연사(覺淵寺) 석조비로자나불좌상(9세기 무렵)

- 경북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867년

* 동화사 비로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관련

 

: 경전상으로 볼때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의 교주이나 화엄경 안에서 비로자나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석가모니불이 깨달음을 얻자 비로자나불과 일체를 이루어 그 깨달음의 세계의 연화장세계가 펼쳐진다.

비로자나불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보살행을 통해서이다.

 

-> 중국에서 노사나불이라는 형식으로 그 도상이 불완전하게 시도 되었다.

-> 밀교에 수용되어 대일여래 표현형식이 확립되었다.

중국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성행하지 않았다.

 

 

서정리 남쪽 옛 마을터 앞에는 윤락충효리란 돌 비석이 도로의 이동을 따라 30여m 북쪽으로 옮겨 세워져 있다. 마을 서편에 서부초등학교가 폐교(현재 경락한의원)가 되었고, 그 앞에는 월성이공동신영세불망비가 있다. 안심지 아래에 양돈장이 있고 부근 도로변에 안학서영세불망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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